그림형제 민담. 2
착한번역 고전명작 시리즈. 좋은 작품을 우리말로 아름답게 표현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림형제 민담 두 번째 책입니다.
형 야코프 그림은 1785년에, 동생 빌헬름 그림은 1786년에 독일 헤센 공국 프랑크푸르트 인근 하나우에서 판사 필립 빌헬름 그림과 도로테아 그림의 장남과 차남으로 태어났다. 모두 9남매가 태어났으나 셋은 어려서 죽고 여섯 형제가 남는데, 야코프와 빌헬름 두 형제는 특히 각별하게 지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면서 가족 모두 카셀로 이주해, 야코프와 빌헬름 형제는 가톨릭 신학교에 다니고 마르브루크 대학에 입학해 1805년까지 법학자 프리드리히 카를 폰 사비니 교수 밑에서 공부하며 역사가 아주 중요하다는 사실과 함께 독일 후기 낭만주의에 대해 깊이 공부했다. 이런 관심은 언어학과 문헌학에 대한 공부로 이어지면서 20대 초반에 ‘그림 법칙’을 정립해, 다양한 민담을 수집할 토대를 구축했다.
인간은 누구나 커다란 사건을 계기로 인생 목표를 설정한다. 그림 형제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에게 프랑스 나폴레옹 황제가 1806년에 독일을 침공한 사건은 크나큰 충격이었다. 독일이 조그만 공국으로 쪼개져서 힘이 없다는 생각에 조국 해방과 동시에 통일이라는 원대한 꿈을 설정한 것이다. 그래서 이질적인 형태로 다양하게 존재하는 독일 민족을 정신적으로 통일하기 위해 구전으로 내려오는 민간 설화를 수집했다. 민담과 동화는 물론 문헌에 이상적으로 나타난 고대 독일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어, 독일이 원래 통일국가였다는 사실을 강조한 것이다. 결국 형제는 약 십삼 년 동안 자료를 수집하고 추려서 1812년에는 <어린이와 가정을 위한 동화> 1권을, 1814년에는 2권을, 1822년에는 <주해서>를 출간했다.
형 야코프는 1830년에, 동생 빌헬름은 1835년에 괴팅겐 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한다. 하지만 1837년 하노버 왕국 에르네스트 아우구스투스 1세가 자유 헌법을 철폐하려고 할 때에 반대한다고 청원하면서 추방당했다. 그러나 이듬해에는 프로이센 왕국에게 초청받아 베를린으로 가서 ‘베를린 왕립 학술원’ 회원이 되었다.
형 아코프는 평생을 독신으로 지냈으나 동생 빌헬름은 어린 시절에 함께 동화를 들으며 성장한 소꿉친구 헬리에테 도로세아와 결혼해서 자녀 네 명을 두었다.
형제는 <동화> 외에도 <독일 전설>, <독일어 문법>, <독일 법의 고대 유산>, <독일 신화>, <독일어 역사> 등의 기념비적인 저서를 발표했다. 특히 1854년에 제1권을 출간한 <독일어 사전>은 이후 여러 학자가 이어받으며 1961년까지 편찬 작업을 계속했다.
서로에게 평생을 헌신하며 학문을 연구하던 형제는 빌헬름 그림이 1859년, 야콥 그림이 1863년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그림 형제는 독일에 퍼진 민담을 모아 기독교 시민사회의 가치관에 합당한 내용으로 수정해서 통일국가와 독일정신 구현에 합당한 역할을 하려고 노력하면서 독일 역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 2차 대전 당시에 나치는 그림 형제 동화를 선전도구로 삼아 ‘동화에 담긴 내용은 순수한 혈통끼리 결혼해야 한다는 사실과 모두 힘을 합쳐서 적에게 대항하는 게 중요하단 사실을 일깨운다.’고 주장할 정도로 그림 형제는 독일에서 가장 사랑받는 작가이며 학자다. 독일에서 유로화를 정식으로 채택하기 전까지 1,000마르크 지폐에 그림 형제 그림을 실을 정도로 말이다.
호수 요정, 닉세
열두 오빠
이와 벼룩
일곱 마리 까마귀
홀레 할머니
장화 신은 고양이
별똥별이 떨어져서 은화로 변한 이야기
장미 공주
지푸라기와 숯과 완두콩
오누이
칼을 든 손
재투성이 아셴푸텔
지빠귀부리 왕
하얀 뱀
해오라기와 후투티
헨젤과 그레텔
황금 거위
황금 새
흰눈이와 빨간 장미
그림형제 저자가 집필한 등록된 컨텐츠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