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에 마음을 베이다 - 시대를 넘은 공감, 기쁨과 정화의 향연
마음을 베인 것 같은 느낌이 있다. 매우 강력해서 뇌리에 새겨지고 오래도록 가슴에 박히는 감각. 원인이 무엇이건 수많은 마음을 베는 것 중 시는 무척 강력한 칼이다. 단지 시인의 특출난 안목과 형용을 접하게 되면서 만은 아니다. 많은 독자는 시어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발견하게 될 때 감동하고 마음을 베이는 듯한 경험을 한다.
세밑 전 새벽 꿈에 나타난 죽은 딸아이 / 다섯 살까지 살다가 세상 떠난 지 2년.
말 배우고 즐거이 놀 때 얼마나 기뻤던지 / 가르치지 않았어도 서책 보며 중얼중얼
선악은 타고난다는 걸 알겠는데 / 현명한 사람, 어리석은 사람의 죽음은 누가 관장하는가.
뚜렷한 얼굴 모습, 잠깐 새 떠나버려 / 늙은 아비 베갯머리 눈물이 더디 말라.
조선 시대 최립이 쓴 ‘夢.女몽상녀, 죽은 딸아이를 꿈에서 만나고’라는 시다. 아이를 잃은 아버지의 마음은 저럴까? 500년, 1,000년도 더 된 사람의 이야기인데 금세 그 마음에 젖어든다. 부부가 유별하던 시대라고 사랑의 감정이 매말랐을까?
평생의 이별의 한, 병이 되어서 / 술로 고칠 수 없고 약으로도 다스릴 수 없네.
이불 속 눈물은 마치 얼음 밑의 물과 같아서 / 밤낮으로 길게 흘러도 사람들은 모를 거야.
허난설헌과 같은 시기에 살았던 이옥봉의 「규방의 한(閨恨)」이란 시다. 첩의 신분으로 평생 남편인 조원을 그리워하다 사그라진 여성의 심정이 잘 나타나 있다. 첩의 소생이라는 이유만으로 첩이 되었고, 뛰어난 재주를 지녔음에도 그 재주를 맘껏 펼치지 못하고 억눌려 살았던 이옥봉의 처지, 나아가 동시대에 있을지도 모를 수많은 ‘이옥봉’들의 삶이 떠오른다.
한시는 옛사람들과 오늘을 사는 우리를 정서적으로 연결해주는 문학 장르로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한시에는 과거의 다채로운 모습, 다양한 감정이 살아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와는 분명히 구별되는 점이 있으나, 희로애락의 감정 자체에 큰 변화가 있는 것은 아니므로 오늘 우리에게도 옛사람의 시를 읽으면서 그들이 지닌 정서와 많은 부분 일치하는 점을 발견하게 된다. 기쁜 일에 기뻐하고 슬픈 일에 슬퍼하는 마음에 현재냐 과거냐는 문제가 될 수 없다. 한시에는 옛사람과 내가 시대를 넘어 공감하도록 이끌어 주는 힘이 있다. (저자의 들어가는 말 중)세월을 뛰어넘어 공감을 이룬다는 것은 그 자체로 기쁨과 정화의 향연이다.
이렇게 예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의 마음을 벤 한시 50편을 골랐다. 각각 사랑, 사회, 역사, 영물, 자연, 죽음, 친구를 노래한다. 한시는 전공자라고 해도 정확하게 읽기 쉽지 않다. 이 책의 빛나는 점은 그래서 한시 구절을 쉽게 풀이하는 데 힘을 쏟은 저자의 고뇌에 있다. 할 수 있는 한 직역에 가깝게 한 한시 번역에서 우리말의 깊은 정서를 살려냈다.
1986년 서울 출생. 중학교를 졸업하고 한국 교육에 회의를 느껴 미인가 대안학교인 금산간디학교에 1기로 입학했다. 1년 반을 다니다 학비가 없어 학교를 자퇴하고 검정고시 후 노량진 재수학원에서 대학 입시를 준비했다.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조기 졸업한 뒤 반년 동안 백수로 지내며 첫 장편소설 《쇠당나귀》를 집필했고, 이 작품으로 삼성리더스허브문학상 대상을 수상했다.
愛 사랑
世 사회
史 역사
物 영물
然 자연
死 죽음
親 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