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이 책은 ‘대한매일신보’에 실렸던 이순신 위인전으로 원제는 ‘수군 제일 위인(水軍第一偉人)으로 대한매일신보 국문판 ‘위인유적’ 난에 소설내용으로서 이중에서 패서생의 번역으로 ‘수군의 제일 거룩한 인물 이순신전’이란 제목으로 실렸던 내용을 신채호의 작품 속에 재탄생한 작품입니다. 이 글의 대부분은 본래의 원문을 최대한 살려 한자와 주석 등을 함께 병용 표기하여 쉽게 이해 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내용에서 다소 어려운 면도 없지 않아 있을 것입니다. 그 시대의 대부분 민족성이 강한 작품들에서 발간된 우리나라 근대문학의 시발점에 나타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들 중에서 일부들은 신문에 실리거나 기사화되어 역사의 기록 등에서 중요 일대기로 남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역사상 한국사를 대표하는 인물을 꼽을 때 세종대왕 그리고 이순신 등으로 그들의 행적과 역사적인 성과들에서 한국사의 큰 흐름을 주도한 인물로 평가하곤 합니다.
이 책은 ‘대한매일신보’에 실렸던 이순신 위인전으로 원제는 ‘수군 제일 위인(水軍第一偉人)으로 대한매일신보 국문판 ‘위인유적’ 난에 소설내용으로서 이중에서 패서생의 번역으로 ‘수군의 제일 거룩한 인물 이순신전’이란 제목으로 실렸던 내용을 신채호의 작품 속에 재탄생한 작품입니다. 이 글의 대부분은 본래의 원문을 최대한 살려 한자와 주석 등을 함께 병용 표기하여 쉽게 이해 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내용에서 다소 어려운 면도 없지 않아 있을 것입니다. 그 시대의 대부분 민족성이 강한 작품들에서 발간된 우리나라 근대문학의 시발점에 나타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들 중에서 일부들은 신문에 실리거나 기사화되어 역사의 기록 등에서 중요 일대기로 남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역사상 한국사를 대표하는 인물을 꼽을 때 세종대왕 그리고 이순신 등으로 그들의 행적과 역사적인 성과들에서 한국사의 큰 흐름을 주도한 인물로 평가하곤 합니다.
저자소개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이자 사학자.
1880년 12월 8일 충청남도에서 태어나, 1897년 성균관에 들어가 1905년 성균관 박사가 되었다.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황성신문》에 논설을 쓰기 시작했고,《대한매일신보》의 주필로 활약했다. 1907년에는 신민회와 국채보상운동 등에 참가했다.
1910년 4월 중국 칭다오로 망명, 그곳에서 안창호, 이갑 등과 독립운동 방안을 협의했다. 그리고 블라디보스토크로 건너가 《권업신문》에서 활동했고, 1914년 이 신문이 강제 폐간되자, 남북 만주와 백두산 등 한국 민족의 고대 활동 무대를 답사했다. 1915년 상하이로 가서 신한청년회 조직에 참가하고, 박달학원의 설립과 운영에도 힘썼다.
1919년 상하이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에 참가, 의정원 의원, 전원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했으나, 한성임정 정통론과 이승만 배척운동을 내세워 사퇴하였다. 그 후 비밀결사 대동청년단 단장, 신대한청년동맹 부단주 등을 지냈다.
1923년 임시정부 창조파의 주동 역할을 하다가, 다시 베이징으로 쫓겨가 다물단을 조직했으며, 중국과 본국의 신문에 논설과 역사논문을 발표하였다. 1928년 일경에게 체포되어 대련 감옥에 수감되었고, 1936년 옥사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저서로 《조선상고사》, 《조선상고문화사》, 《조선사연구초》, 《조선사론》, 《이탈리아 건국삼걸전》, 《을지문덕전》, 《이순신전》, 《동국거걸최도통전》 등이 있다.
목차
머리말
신채호는
제1장 서론
제2장 이순신이 어렸을 때와 소시적의 일
제3장 이순신의 출신과 그 후에 곤란
제4장 오랑캐를 막던 조그만 싸움과 조정에서 인재를 구함
제5장 이순신이 전쟁을 준비
제6장 부산 바다로 구원하려 간일
제7장 이순신이 옥포에서 첫 번 싸움
제8장 이순신의 제2전 당포(唐浦)
제9장 이순신의 제3전 견내량(見乃梁)
제10장 이순신의 제4전 부산(釜山)
제11장 제5전 후에 이순신
제12장 이순신의 구나(拘拿)
제13장 이순신의 옥에 들어갔다가 나오던 동안 집과 나라의 비참한 운수
제14장 이순신의 통제사 재임과 명량(鳴梁)에서 대 승첩
제15장 왜적의 말로
제16장 진린(陳璘)의 중도의 변함과 노량의 대전
제17장 이순신의 반구와 그 유한
제18장 이순신의 제장(諸將)과 그 유적과 그 기담(奇談)
제19장 결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