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 - 불의 신, 예술의 여신 : Nature&Culture 3
잔혹한 재앙이지만 아름다운 피사체였던 화산, 그 뜨거웠던 현장을 직접 체험하고 다양한 예술로 승화시킨 인류의 기록
▼ 화산, 여전히 불타오르는 현재 진행형의 공포
사람들은 화산의 엄청난 폭발이 보고 싶어 하겠지만, 진정 좋아하는 것은 화산의 파괴력이 아니라 모든 무기물이 따르는 중력의 법칙에 저항하는 힘이다. 화산 활동은 역사적, 지역적으로 다르게 인지되긴 했으나, 꾸준히 인류의 관심사 한가운데 존재했다.
멀게는 기원전 1620년경 산토리니, 79년과 1631년 베수비오, 1766~1768년 헤클라, 1815년 탐보라, 1883년 크라카토아 등지에서 일어난 참혹하고 파괴적인 결과를 낳은 대규모 분화에서부터, 얼마 전 분화해 1만 여명 이상의 주민들을 공포에 몰아넣었던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우타라 주의 시나붕 화산에 이르기까지, 지구의 화산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저 위 어딘가에서 지구를 내려다보면 언제든 어떤 식으로든, 어딘가에는 분화 중인 화산이 있을 것이다. 그것이 내뿜는 화산재의 구름에는 천둥과 번개가 반드시 함께한다. 2010년 4월 아이슬란드의 빙하 에이야퍄들라이외퀴들 밑에서 있었던 폭발은 다시 한 번 화산의 위력을, 그리고 우리 행성의 나약함을 새삼스레 절감하도록 해주었다. 작은 화산임에도 뿜어져 나온 연기와 재의 구름이 영국과 유럽 대륙에까지 영향을 미쳤고, 세계의 항공 교통을 혼란의 구렁텅이로 던져 넣었기 때문이다.
인류가 이 행성에 살기 시작 전부터 화산은 이미 활동 중이었다. 화산 분화는 행성이 내놓을 수 있고 인류가 목격할 수 있는 가장 난폭한 폭행이었다. 이러한 폭행은 인간의 기억에 희미하고 아득한 흔적들을 남겼으며, 인류는 끊임없이 자신들을 위협하는 이 절대적 폭행을 기록하려고 노력했다. 이 책은 화산을 과학적 눈높이뿐 아니라, 화가와 작가들의 눈을 통해 살펴보고, 화산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과 그 인식의 변천사를 탐구한 결과물이다.
▼ 화산, 그 인식의 시작
화산 폭발은 인간으로는 대항할 수 없는 자연의 위대한 힘이다. 그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던 역사 속 그 순간에, 인간이 할 수 있던 것은 후손에게 남기는 기록뿐이었을 것이다. 화산 분화의 기록은 유품이나 기록된 신화를 통해 전해 내려온다. 기원전 1620년 무렵 그리스 본토와 터키의 중간에 있는 산토리니 화산(현재 이름은 테라Thera)이 폭발한 것이, 인간 역사에 기록된 최대의 자연 파괴 사건이었다. 인근 도시 아크로티리가 용암과 잿더미에 묻혔고, 분화로 생긴 지진해일이 크레타 섬을 덮치면서 미노아 문명의 몰락을 촉진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고대 그리스·로마 신화에서는 산이 분화하는 것을 일상적으로 헤파이스토스가 작업 중이라는 신호로 생각하거나 땅 밑에 갇힌 신들의 용트림이라고도 생각했다. 화산활동은 고대 그리스·로마인에게 상상력 넘치는 신화의 천연자원을 제공하는 한편, 초기 철학자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무슨 일이 그토록 격렬하게 일어나고 있는지 설명해야 하는 숙제와 같았다.
그리스 철학자 엠페도클레스는 기원전 479년 분화한 에트나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산山을 자신이 신과 동격임을 보이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했다. 그의 죽음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불멸을 소원하던 그가 스스로 분화구에 뛰어들었다는 얘기도 있고, 그가 화산에서 신이 되어 인간들 사이로 돌아올 거라 믿었다고 말하는 반면, 또 다른 내용은 그가 실제로 투신하긴 했지만 분화 도중에 튕겨 나와 달에 착륙했으며, 거기서 아직도 이슬을 마시며 살고 있다고 한다. 어찌 되었든 고대 그리스·로마의 많은 철학자가 화산의 개념과 목적을 붙들고 끊임없는 씨름을 했다.
세계 곳곳의 화산 지대에는 다양한 신화와 전설, 그리고 기록이 전해 내려온다. 대부분은 사랑과 미움, 전쟁과 평화, 자비와 형벌, 종교와 미신에 관련한 것들이다. 아마도 피할 수 없는 물리적 사실에 맞서 이를 설명하고 공포심을 억누르기 위해서일 것이다.
▼ 화산, 기록의 시작
누구나 쉽게 화산이 폭발하는 순간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화산의 분화를 미리 예지할 수 있다면 화산을 덜 두려워할 수 있겠지만 화산은 부지불식간에 분화하며, 그 폭발적 파괴력으로 끔찍한 재앙을 만들어낸다. 평범한 인류가 화산을 접할 수 있는 기회는 누군가의 관찰과 기록에 의해서다. 사진기가 없던 시대의 이 자연재해를, 우리는 화가의 그림을 통해서 느낄 수 있다. 특별한 도구가 없었을 때는 직접 보고 기록을 남기는 방법이 유일했다. 덕분에 당시의 기록들은 당장이라도 유황 냄새가 배어나올 것처럼 생생하다.
화산 폭발을 언급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베수비오의 분화다. 79년 8월 24일 분화한 베수비오는 폼페이를 집어삼키며 역사 속에서 사라지게 했다. 그 자리에 있던 소 플리니우스의 생생한 묘사는 인류 역사에 최초로 남겨진 화산 기록이 되었다. 또한 전 세계인들의 가슴에 베수비오가 화산 폭발의 대명사처럼 인지되게 만들어준 에드워드 불워 리턴Edward Bulwer Lytton의《폼페이 최후의 날Last Days of Pompeii》에 기초가 되기도 했다.
화가들은 먼발치에서 관망하듯 화산을 보고 그리거나 누군가에 전해들은 내용으로 직접 본 사람보다 더 생생하게 묘사를 하기도 했다. 물론 겁 없이 용암이 끓어올랐던 화산 한복판으로 직접 들어간 이도 적지 않았다. 예를 들어 아타나시우스 키르허는 1638년 베수비오가 활발하게 위협하던 때, 밤중에 빨갛게 들썩이는 분화구 속으로 직접 내려간 뒤 생생한 보고서를 쓰기도 했다. 화가들이 화산의 격렬함과 아름다움에 경이감을 표현한 반면, 과학자들은 관찰을 위해 화산에 올랐다. 초기 과학자들의 용기는 사람을 기겁하게 만들 만큼 무모했다. 화산을 그린 화가 가운데 터너를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우스운 사실은 수십 년 동안 풍경 묘사로 진실성을 신뢰받은 터너가 화산 풍경만큼은 자신의 작품 속 장소, 서인도, 인도, 중동은 물론 칠레 해안에서 본 안데스까지 그 어디도 가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너무나도 훌륭한 터너의 <나폴리 만>과 <베수비오의 분화>는 실제 목격하지 않은 허구라는 사실이다.
▼ 화산, 예측할 수 없는 공포를 가늠한다
1834년 불워 리턴의《폼페이 최후의 날》은 세계적으로 관심을 받았다. 러시아 화가 카를 브률로프는 기념비적인 유화를 남겼으며, 월터 스콧과 니콜라이 고골은 그림에 압도당했다. 푸시킨은 그림에 영감을 받아 <베수비오의 목구멍>이라는 시를 남겼다. 이런 관심의 파도를 타고, 불워 리턴의 책은 순식간에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며, 10개 국어로 번역된 뒤에는 연극용으로 각색되었고, 20세기에 들어서는 영화로 제작되었다. 미술과 문학의 이미지와 과학적 현실 사이의 간극은 18세기와 19세기를 거치며 점점 더 뚜렷해졌다. 미술과 과학이 발전하면 둘 다에게 유용한 뭔가가 생긴다. 그러므로 둘은 암암리에 협동할 의무가 있다. 미술이 과학을 흔들어 화산학을 진척시켰다고 해도 맞는 말일 것이다. 에트나 산 밑에 갇혀 몸부림치는 티폰의 이미지 또는 베수비오의 1631년 분화를 담은 현대의 조각 동판화를 보면서 섬뜩한 죽음의 원시적 공포를 경험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화가마다 용기, 허세 그리고 창작력의 수준이 다르기 때문에, 충분히 안전해졌을 때서야 베수비오에 오른 화가들이 실제로 본 것은 격노해 흐르는 화쇄류가 아니라, 대개는 부서진 경석 덩어리와 재, 그리고 식어가며 증기를 뿜는 용암의 검은 바다였을 것이다. 그래서 화산학의 과학적 지식이 증가한 19세기에 접어들면서 화산활동 그림은 더 이상 흥미를 끌기 어렵게 되었다.
오늘날의 화산학자들이 정교한 장치들을 가지고 화산활동을 예측해 현지 주민을 대피시키려 노력할 수는 있지만, 이들뿐 아니라 어떤 인간도 분화를 멈출 수는 없다. 우리는 우리를 떠받치는 용광로 위에서 살고 있다. 인간이기에 겪는 하나의 흥분되고 예측할 수 없는 사실이다. 분화는 사건이 가까운 곳에서 일어나면 직접적으로 예측할 수 있는 반면, 그것을 멈추거나 피할 수는 없다. 지금처럼 이동하는 용광로 위에서 살아가는 한, 우리는 다시 그 일이 일어날 것임을 자신에게 상기시켜야 한다. 지질학회의 보고서가 역설했듯이, 그것은 ‘만일’의 문제가 아니라 ‘언제’의 문제다. 초분화가 재의 구름과 각종 가스를 한데 묶어 대기 속으로 내던진 결과는 최대 5℃의 지구한랭화일 것이고, 그 정도면 새로운 빙하기를 불러와 적도의 열대우림을 얼려죽이기에 충분하다.
현재의 정치, 사회, 경제 구조는 지나치게 정교하게 조율되어 있어서 어느 화산이 1783년의 라키나 1815년의 탐보라, 1883년의 크라카토아 규모로 분화한다면 인류는 무사히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최소한 이 행성에서는 화산이 아마도 유종의 미를 거두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