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이 전자책은 문화관광부의 지원을 받아 제작된 것입니다▒
일본어 작품으로 아쿠다가와상 후보에까지 오른 촉망받는 작가였으나 중국 태항산 지구의 항일 근거지로 탈출, 일제에 맞써 싸우며 글을 썼던 저항작가 김사량 선집 1권. 일제의 가혹한 탄압을 피해 고향인 평양을 떠나 항일 근거지인 태항산 남장촌에 도착하기까지 망명의 노상에서 보고 느낀 것을 기록한 항일 여행기. 노모와 처자식을 두고 떠나는 심경부터 태어나서 처음보는 태극기 앞에서 자유롭게 글을 쓰는 감동에 이르기까지 혼탁한 시류에 휩쓸리지 않으려 노력한 올곧은 지식인의 모습과 함께 해외 3대 독립운동의 하나였던 조선의용군에 대한 생생한 증언이 살아있다.
저자소개
1914년 평양에서 태어났다. 1930년 평양교보 시절 반일 저항시위로 동맹휴고에 참여한 주동자로 찍혀 일본으로 건너간 그는 1936년 동경제국대학 독문과에 입학했다. 그곳에서 일본의 군국주의와 파시즘의 흐름에 맞선다는 뜻의 동인지 '제방'에서 활동했다.
1939년 학교롤 졸업한 그는 본격적인 문필활동을 시작하고 같은 해 4월 그의 출세작 [빛 속으로]를 집필했다. 이 작품은 일본인 아버지와 조선인 어머니를 둔 혼혈아의 심리를 관찰한 소설로서 일본의 아쿠타가와 상 수상 후보에 올라 사토 하루오로부터 ‘민족의 비통을 섬세히 그려낸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에도 그는 '토성랑', '천마', '풀은 우거지다' 등을 계속해서 발표했다.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면서 경찰에 구금되었던 그는 1945년 2월‘조선 출신 학도병 위문단’의 일원으로 시인 노천명과 함께 중국에 파견된 길에 탈출을 감행하여 그해 5월 말 항일조선인부대가 활동중인 중국 북동부의 태항산 근거지에 도착한다. 거기서 그는 조선독립의용군에 참가하려다 해방되었다는 연락을 받고 1945년 10월 평양으로 들어가 북한의 인민 예술가로서 문학 창작을 하고 지도적인 입장에 섰다. 하지만 일제 시대에 일본어로 소설을 썼고 그것이 일본의 대표적인 잡지 『문예춘추』나 『문예』에 게재되었다는 것은 결코 그의 경력을 빛내 주지 못했다. 이 무렵 그의 작품으로 '뢰성'(46년), '더벙이와 버벙이'(47년), '무쇠의 군악'(49년) 등의 희곡과 '마식령'. '남에서 온 편지'(47년), '칠현금'(49년) 등의 소설이 있다.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하자 종군기자가 된 김사량은 북한의 인민군 진군을 따라 서울-수원-대전을 거쳐 마산까지 내려갔다. 그는 종군기로 '서울에서 수원으로', '우리는 이렇게 이겼다', '지리산을 지나며', '락동강 호반을 지나며' 등을 발표했다. 하지만 미군의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갑자기 전황이 불리해지자 패주하게 되면서, 김사량은 지병인 심장병 때문에 결국 원주 근처 산중에서 퇴각 진열로부터 낙오되었다. 전우에게 아껴쓰던 만년필을 유물로 주며 그것을 가족에게 전해 달라고 부탁한 후, 1950년 9월 17일 그가 남긴 종군기 <바다가 보인다>를 마지막으로 이후 그는 영원히 행방불명되었다.
1928년 평양고등보통학교 입학,
1931년 동맹휴교사건으로 퇴학당하고 일본으로 건너감,
1932년 사가고등학교 입학,
1936년 동경제국대학 문학부 독일문학과 입학,
1940년 소설 『빛 속에』가 아꾸다가와상 후보작으로 결정됨,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종군작가로 조신인민군과 함께 남하,
보고문학『종군기』를 발표,
인민군 1차 후퇴 때 강원도 원주 부근에서 심장병으로 낙오한 뒤 소식 끊어짐.
본명 김시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