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스트로와 마르케스 - 20세기 두 전설적 인물의 권력과 우정
라틴문학의 신화 마르케스, 중남미의 붉은 별 카스트로
그들은 어떻게 40년에 걸쳐 강철 같은 우정을 지켜오고 있는가
-20세기 최고의 ‘문학과 혁명’의 만남, 그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1982년 《백 년 동안의 고독》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이후 라틴아메리카 문학의 아이콘이 되어왔다. 중남미 문학은 마르케스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불릴 정도이다. 마르케스를 통해 세계인들은 ‘마술적 리얼리즘’으로 불리는 중남미 문학세계에 입문할 수 있었다.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는 최근 동생 라울 카스트로에게 자신이 쥐고 있던 모든 권좌를 물려주고서 반세기에 걸친 최고지도자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는 체 게바라와 함께 라틴아메리카에 혁명의 불씨를 피운 혁명가였지만, 볼리비아에서 게릴라 대원으로서 최후를 마친 체 게바라와는 달리 가장 장기집권한 권력자로 역사에 남게 되었다. 1959년 1월 쿠바혁명 이후 52년간이었다.
《카스트로와 마르케스》는 이 두 전설적 인물의 우정에 얽힌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마르케스는 가는 곳마다 늘 화제를 몰고 다녔지만, 그가 쿠바혁명의 지도자 피델 카스트로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깊은 우정을 맺고 있다는 이야기는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하지만 피델이 마련해준 마르케스의 저택이 아바나에 있고, 그는 1년 중 많은 시간을 쿠바에서 보낸다. 실제로 마르케스는 “피델이 나보다 먼저 죽는다면 다시는 쿠바에 가지 않을 것이다”라고 공공연히 밝힐 정도로 두 사람의 관계는 깊다. 좀체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피델조차 “마르케스 없는 우정은 상상할 수 없다”고 말한다.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해 알고는 있었으나 피델이 마르케스의 마음을 받아들인 1975년부터 본격적으로 친구 관계를 맺어왔다.
사실 두 사람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문학적·정치적 위상을 떠나, 일반적인 관점에서 볼 때 ‘친구’가 될 수 있는 조건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 출신 국가는 콜롬비아와 쿠바로 다르긴 하지만 둘은 대학도 같은 시기에 다녔고 대학시절 전공도 법학으로 같았다. 물론 피델은 대학시절부터 행동가였고, 마르케스는 법학도이면서도 문학청년이라는 점이 다르긴 하다. 그러나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듯이, 마르케스는 라틴아메리카의 정치적 운명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중남미의 미래가 사회주의에 있다고 믿고 있었다. 피델 또한 문학적 취향이 강하고, 작품을 보는 높은 안목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이 책의 저자들은 두 사람의 우정을 순수한 우정의 관점으로만 보기에는 석연찮은 점이 많다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특히 피델을 향한 마르케스의 우정은 집착이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로 지나치게 경도돼 있다고 저자들은 보고 있다. 사적인 관계와 공적인 관계를 구분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1959년 피델 카스트로가 체 게바라 등과 함께 소규모 게릴라 대원들을 이끌고 바티스타 독재정권을 무너뜨렸을 때 전 세계 지식인들은 일제히 환호의 박수를 보냈다. 수백년간에 걸친 스페인·포르투갈의 식민지배, 이후 미국의 간섭과 비호 아래 독재정권이 계속해서 지배하는 중남미에서 반독재·반미제국주의를 들고 나온 쿠바혁명은 지식인들을 매혹시키기에 충분했다. 변호사 출신의 지적인 이미지, 체 게바라와의 우정으로 드러난 불굴의 혁명정신도 한몫했다. 특히 스탈린주의의 1인 지배에 신물이 나 있던 좌익 지식인들은 쿠바혁명에서 소련에서 구하지 못했던 새로운 희망을 보았다. 당시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던 마르케스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관여하고 있던 신문과 잡지 등에 쿠바혁명과 피델 카스트로를 ‘찬양’하는 글을 열정적으로 발표했다.
하지만 모든 혁명이 그러했듯이 혁명이 정착되는 과정에서 피델은 언론과 표현의 자유, 정당결성의 자유 등 민주주의의 기본 요건들을 외면하고 무시하기 시작했다. 이에 서방의 지식인들도 서서히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샤르트르와 보바르, 바르가스 요사, 수잔 손탁 같은 이들은 드러내놓고 피델 카스트로와 쿠바혁명 지도자들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이 책에도 소개되고 있지만 체 게바라마저 피델의 방침에 맞서 마찰을 빚고 결국 갈라서게 되었다.
그런데도 마르케스는 단 한 번도 이 비판의 대열에 동참하지 않았다. 정부의 강압에 못 이겨 쿠바의 유명작가가 반강제적인 ‘자아비판서’를 읽어내려 갈 때도 한마디 항의도 하지 않았고, 지식인들이 피델에게 보내는 항의서한에 서명하기도 거부했다. 평소 ‘사형제도에 절대반대한다’고 천명했음에도 막상 쿠바에서 사형이 집행되자 ‘쿠바가 처한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며 피델을 거들었고, 정치범들에 대한 투옥과 망명조치에도 소극적으로 방관하는 태도를 취했다. 이에 한때 마르케스와 돈독했던 친구들도 하나둘씩 떨어져 나가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인물이 2010년 노벨상 수상작가인 바르가스 요사이다. 둘은 한때 중남미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서 굉장히 가까운 사이였고 요사는 마르케스 문학을 주제로 박사논문을 쓰기도 했었다. 그런 그가 “마르케스는 피델의 궁정작가”라고 비난하기에 이르렀다.
도대체 왜 마르케스는 피델 앞에서는 자신의 신조와 원칙까지 어겨가면서 그를 옹호하려고 하는 걸까? 단순히 친구와 우정을 지키기 위해서인가? 아니면 반세기에 걸쳐 권력을 행사하고 있는 피델이 나눠주는 권력의 달콤함에 빠져 있기 때문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