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학으로 동아시아를 읽다
낯선 문지방 앞에 설 때, 그리하여 문고리를 잡을 때, 우리는 조금씩 진동한다. 문지방 너머에 대한 미지의 예감이 우리를 설레게 한다. 조선의 지식인 연암 박지원은 국경의 압록강을 건너가면서 도道란 다른 곳이 아니라 바로 이 물과 언덕의‘경계[際]’에 있다는 것을 깨닫고 온몸으로 진동하였다. 그것은 다른 지평으로 나서는 문지방의 진동이요, 새로운 생성의 설렘이었다.
비평형 열역학자 프리고진은 모든 존재가 하나의 요동으로 이어져 있음을 밝히고 있다. 우리 몸속에 온 우주와 이어진 진동과 요동이 잠들어 있다. 요가의 수련은 이 요동의 에너지를 깨우는 데서 시작한다. 요동하는 것은 살아 있다. 살아 있기 위해서 우리는 다시 이 떨림, 파동, 진동, 설렘을 깨워야 한다.
세상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늘 혼자 지내기를 좋아했던 중학생 소년의 생래적인 쓸쓸함을 떠올려 본다. 한 짓궂은 문학청년이 그 쓸쓸한 소년을 시의 나라로 유혹했고, 소년은 그 유혹을 이겨내지 못했다. 그 이후 소년은 혼자만의 시 노트를 가지게 되었고, 그 노트는 아직도 채워지지 못하고 있다. 아직도 시를 쓰는 이유는 여전히 알 수 없는 그 쓸쓸함의 정체를 알기 위해서이고, 쓸쓸하게 혼자 간직하던 그 노트를 마저 채우기 위해서이고, 그리고 언젠가 그 쓸쓸함의 끝에서 진정 세계와 화해하기 위해서이다.
시인 이성희는 1959년 부산에서 태어나 부산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1989년 『문예중앙』을 통해 등단했다. 부산대 철학과에서 ‘장자莊子’ 연구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지금도 시와 철학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다. 시집으로는 『돌아오지 않는 것에 관하여』, 『안개 속의 일박』, 『허공 속의 등꽃』이 있으며, 저서로는 『무無의 미학』, 『미술관에서 릴케를 만나다』(12), 『동양명화감상』, 『빈 중심의 아름다움·장자의 심미적 실재관』(2009년 문화체육관광부 우수학술도서 선정), 『미학으로 동아시아를 만나다』와 다수의 공저가 있다. 현재 계간지 『신생』의 편집위원으로 있다.
서문
1부 생성의 예술론
2부 언어의 사슬을 넘어서
3부 물고기의 즐거움
4부 삶과 예술
본문 도판 소장처와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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