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를 비우는 시간
현대인들은 근대화와 도시화, 고속화로 편리하게 살기 위한 기반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이로 인해 조용히 머리를 비울 수 있는 평온한 공간과 시간을 잃어버렸고, 늘 시간에 쫓기는 긴장된 삶 속에서 이윤이나 효율, 경영이나 부귀영화, 스피드 같은 것에만 집착한 채 점점 황폐해져 가고 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19세기에 “어째서 우리는 이토록 조급하게 인생을 허비하면서 살고 있는가?”라고 일갈했지만, 21세기의 우리는 그때와 비교가 안 될 만큼 조급한 종종걸음으로 소중한 시간을 덧없이 흘려보내고 있다.
일본 직장인들의 꾸준한 호응으로 스테디셀러에 오른『머리를 비우는 시간』의 저자는 이렇듯 스트레스에 찌든 나날을 보내고 있는 불행한 현대인들에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하니 ‘머리를 비우는 시간의 소중함’을 일깨워준다.
물론 요즘같이 1분 1초가 아까운 세상에 멍하니 머리를 비우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하면 웬 헛소리냐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특히 직장을 잃어 일하고 싶어도 못하는 사람들, 혹은 최소한의 생활이라도 유지하려면 한시도 일손을 놓을 수 없는 사람들은 무슨 팔자 좋은 소리를 하는 거냐며 화를 낼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사히신문사 퇴직 후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면서 산속에 ‘나태암’(懶怠庵)이라는 쉼터를 마련해 종종 머리를 비우는 시간을 갖는 저자는 오늘날처럼 바쁘고 힘겨운 세상일수록 광속(光速)의 스피드를 늦추고, 물질적인 부와 성공에 대한 탐욕도 버리고, 노동시간도 줄여보자고 권한다. 그리고 잠시나마 일상에서 벗어나 산책도 하고, 남몰래 몽상에도 잠겨보고, 뜨거운 온천물에 몸도 담가보고, 혼자만의 고독한 시간도 가져보고, 자연 속으로 녹아들어가는 기쁨도 느껴보는 삶을 살자고 말한다.
물론 숨돌릴 겨를조차 없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사람들은 이런 잠깐의 여유를 갖는 것조차 쓸데없는 일로 치부해 버릴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머리를 비우고 자신의 삶을 찬찬히 음미하고 즐기는 시간은 결코 쓸데없는 시간이 아니다. 매 순간 숨통을 죄어오는 오늘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마음속 케케묵은 것을 뱉어내고 신선한 것을 받아들이는 ‘삶의 심호흡’과도 같은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또한 멍하니 머리를 비우는 시간은 우리에게 번데기 시기와도 같이 중요한 시간이다. 나비가 유충에서 날개가 돋아 화려한 모습으로 하늘로 날아오르기까지는 조용히 명상하는 것 같은 긴 시기가 반드시 필요하듯이, 우리도 머리를 비우고 고요히 명상에 잠기는 시간을 가져야만 내면의 생명력과 야성, 창조의 힘을 키울 수 있다. 멍하니 있으면 마음속에 여유와 넉넉함, 여백이 만들어진다. 마음속에 여유와 넉넉함과 여백이 만들어지면 지금 이 순간과 내일을 살아가는 삶의 활력도 샘솟게 된다.
삶을 소중하게 여기는 요점은 ‘오늘’이라는 날, ‘지금’이라는 시간을 느긋하고 평온하게 즐기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가능하다면 하루에 몇 번이고 머리를 비우는 시간을 가져보자. 30분, 아니, 3분이라도 좋다. 창가에 앉거나 가까운 공원에라도 가서 멍-하니 햇빛에 반짝이는 나뭇잎들을 바라보고, 때로는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은 산이나 숲, 강이나 바다를 찾아가 머리를 비우는 시간을 즐겨보자. 이 시간들은 결코 헛된 것이 아니며, 우리에게 귀중한 삶의 양식이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