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가 쓴 세쌍둥이 육아일기
큰손자는 자기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 며느리가 조금은 힘들어 하기도 했다. 그것도 잠시, 아이들이 커가면서 저희끼리 보고 협동하며 살아가는 법을 터득할 것이다. 기다릴 줄도 알고 양보도 할 줄 아니 인성공부는 따로 하지 않아도 되리라. 여러 형제가 서로 조율하면서 자라다 보면 타인을 생각하고 배려하는 걸 익혀서 한 시민으로 살아가는데 무리가 없을 듯하다. 우리가 어렸을 때를 생각해보면 많은 형제 속에서도 형제끼리 우애 있게 자랐다. 그때처럼 부모가 남의 자식과 비교하지 않고 피해의식 갖지 않고, 욕심을 줄인다면 다자녀를 두고도 행복하고 원만한 가정을 이룰 수 있다는 생각이다. 가끔 주위에 호화롭게 키운 자식들로부터 버림받는 부모도 생겨난다. 남부럽지 않게 결혼까지 시켜놓고 나니 어느 날 소식도 없이 이민을 간 경우도 있다. 모두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한 자녀로 부모 혜택 많이 받고 자란 사람일수록 이기적이기가 쉽다.
아이들을 낳아 기르려면 경제적인 문제, 올바르게 키울 수 있는 환경문제 등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자녀가 바르게 성장하려면 부모의 정성과 넘치지도 모자라지 않는 사랑과 관심이 중요하지 않겠는가. 사회구조상 불가피한 현상이지만 항상 경쟁에서 이겨야 하고, 이겨야만 살아남는다고 가르치는 부모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아이들은 성격도 취미도 제각각인데 아이의 개성은 생각지 않고 경쟁심만 부추기는 건 불행한 일이다.
어머니로서의 자세는 차별하지 않고, 남과 비교하지 말고 마음 담은 사랑의 물 듬뿍 주어 정성껏 기를 일이다. 낙숫물은 언제나 제자
리에 떨어지는 법. 절대로 다른 곳에 떨어지지 않는다.
나는 맞벌이 주부로 대식구가 함께 사느라 생활의 질 같은 것은 따질 여력도 겨를도 없었다.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정부시책에 따라 낳고 보니 아들 둘이었다. 그때는 아들이 최고의 가치였고, 종가니까 아들도 둘은 돼야 한다고 만족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를수록 딸이 있었으면 했다. 우리가 경제적 부담을 질 각오로 야만인 소리까지 들으면서 삼남매를 뒀다. 낙태를 시키려고 병원차가 산꼭대기까지 올라가 지켜 서서 협박성 회유까지 하면서 산아제한을 종용할 때였다. 먼 나라 이야기 같지만 불과 30년 전의 일이다. 좀 더 멀리 바라보는 인구정책, 정부시책이 못내 아쉽다.
자식을 하나만 낳아서 잘 기르자는 생각은 위험한 것 같다. 조금만 깊게 생각해도 답은 금방 나온다. 형제가 있는 아이, 형제가 없는 아이, 어느 쪽이 좋겠는가. 가임여성이라면 주저하지 말고 아기를 더 낳아 형제 있는 아이를 만들어주면 좋을 것 같다. 맛있는 걸 먹어도, 좋은 옷을 입혀도 서로 거울처럼 마주보고 웃을 수 있는 형제 남매면 얼마나 좋을까. 나아가서 국력도 기르고, 이러한 희망에 부응하는 정부시책이 좀더 적극적이어야 하지 않을까. ‘둘만 낳아 잘 기르자’가 아니라 ‘다자녀 낳아 잘 기르자’라든가 말이다. 따라서 우리나라 방방곡곡에 아기의 울음소리가 많이 들리는 마을. 젊은 혈기가 넘치는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 나라에서 출산장려책을 위해 구체적인 방안이 이루어지면 좋지 않을까 싶다.
-'책을 펴내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