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끌림
<이끌림>
이나는 살그머니 문을 밀어 열었다. 커튼이 드리워져 적당히 어두운 방 안, 남자는 다리를 길게 뻗은 채 침대 헤드에 몸을 반쯤 기댄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그새 잠이 든 건가?
이나는 살금살금 다가가 침대 곁 협탁에다 죽 쟁반을 올려놓았다. 고개를 들이밀고 탐색이라도 하듯 남자의 얼굴을 들여다보자 감겨 있는 남자의 눈 대신 짙은 눈썹이 이나를 마주 보았다. 이나는 제풀에 움찔 놀라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생동감 있는 눈썹을 마주 대하니 어쩌면 잠든 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아침 식사를…….”
말이 채 끝맺어지지 않았다. 온몸이 또렷이 긴장되는 느낌. 시선이 맞부딪친 것도 아닌데 그랬다. 어렵다던 호준의 말이 비로소 실감이 나는 듯했다. 눈 감고 비스듬히 누운 자세로도 앞에 선 사람을 잔뜩 긴장시키는 저 서늘한 기운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 이나는 궁금해졌다.
“옷이라도 좀 갈아입고 눕지. 이러고 어떻게 쉰담.”
이나의 가만한 중얼거림에 그가 눈을 떴다. 눈길이 마주쳤다. 마음이라든가 감정이라든가, 그러한 것들을 도무지 들여다볼 수 없을 만큼 냉정하고 깊은 눈동자였다. 피하고 싶지 않았는데 결국 이나가 먼저 눈을 아래로 내려뜨렸다.
“아침을 가져왔…….”
이나의 말은 중간에 잘렸다.
“나가.”
일말의 여지도 허용하지 않는 비정한 명령의 어조. 그 어조가 이나의 가슴을 싸늘히 내리그었지만 주눅 들지 않으려고 이나는 굳이 대답을 했다.
“네.”
그리곤 돌아서서 서너 걸음 걸어 나오던 이나는 흡, 숨을 멈추며 그 자리에 섰다.
우리말을 하네!
나가, 라는 그 명령은 분명 한국어였다. 이나는 다시 뒤로 돌아섰다. 남자는 이나를 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 눈빛은 공허하고 차가웠다. 이나라는 한 인격체를 바라보는 것이 아닌, 방 안에 구비된 가구들 중 하나를 보는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그런 눈빛이었다. 마음 한 구석이 불안하게 떨리다가 툭 내려앉았다. 가슴속 떨림과 내려앉음을 애써 부인하며 이나는 꼭 한 걸음만 앞으로 떼어놓았다.
김지운
봄을 좋아한다.
단편소설 ‘그 여자’로 동서커피문학상을, ‘손톱’으로 <생각과느낌> 신인상을, 장편소설 <오르골>로 신영사이버문학상을 받았다.
몇 년 동안 소설만 써오다가, 작년부터는 동화와 청소년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장편동화 <엄지>로 MBC창작동화대상을, 단편동화 ‘오늘은’으로 푸른문학상 [새로운작가상]을 수상했다.
지은 책으로 장편소설 <오르골>, <햇빛 아래 그가 있다>, <계절사랑 시리즈>, <이끌림>, <느낌>, <포옹>, <당신의 숲> 등이 있으며, 장편동화 <엄지>와 동화집 <나의 철부지 아빠>(공저), 그리고 시 ‘봄날’로 지하철시집 <행복의 레시피>에 참여했다.
현재 소설과 동화와 청소년소설을 쓰고 있으며, 다양한 빛깔의 삶과 사랑과 사람을 그리고 싶다.
0월 - 블루하우스를 만난 달
1월 - 얼음 얼어 반짝이는 달
2월 - 새순이 돋는 달
3월 - 한결같은 것은 아무것도 없는 달
4월 - 생의 기쁨을 느끼게 하는 달
5월 - 오래전에 죽은 자를 생각하는 달
6월 - 나뭇잎이 짙어지는 달
7월 - 열매가 빛을 저장하는 달
8월 - 다른 모든 것을 잊게 하는 달
9월 - 사슴이 땅을 파는 달
10월 - 큰 바람의 달
11월 -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
12월 - 다른 세상의 달
13월 - 그의 심장에 들어가 앉은 달
작가의 말
외전 <이끌림, 그 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