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 이야기
일인들이 토지와 그 밖에 온갖 재산을 죄다 그대로 내어 놓고 보따리 하나에 몸만 쫓기어 가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는 한 생원은 어깨가 우쭐하였다.
"거 보슈 송 생원. 인전들, 내 생각 나시지?"
한 생원은 허연 탑삭부리에 묻힌 쪼글쪼글한 얼굴이 위아래 다섯 대밖에 안 남은 누런 이빨과 함께 흐물흐물 웃는다.
"그러면 그렇지. 글쎄 놈들이 제아무리 영악하기로소니 논에다 네 귀탱이 말쪽 박구선 인도깨비처럼, 어여차 어여차 땅을 떠 가지구 갈 재주야 있을 이치가 있나요?"
한 생원은 참으로 일본이 항복을 하였고, 조선은 독립이 되었다는 그 날-팔월 십오일 적보다도 신이 나는 소식이었다. 자기가 한 말(豫言)이 꿈결같이도 이렇게 와 들어맞다니……. 그리고 자기가 한 말대로 자기가 일인에게 팔아넘긴 땅이 꿈결같이 도로 자기의 것이 되게 되었다니…….
이런 세상에 신기하고 희한할 도리라고는 없었다.
소설가·극작가. 전북 옥구 출생. 중앙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와세다 대학 부속 제일와세다 고등병원 영문과를 중퇴한 뒤 귀국, 동아일보·조선일보·개벽사 기자를 지냄. 단편 「새 길로」가 『조선문단』에 추천되면서 문단에 등단하여 290여편의 작품을 발표함.
장편으로 『탁류』『인형의 집을 나와서』등이 있으며, 단편으로 「레디메이드 인생」「인테리와 빈대떡」「치숙」등이 있음. 중편으로 『과도기』『소년은 자란다』등이 있으며, 뒤늦게 발굴된 희곡으로 『가족 버선』과 『제향날』『돼지』『당랑의 전설』등이 있음. 1950년 6월 11일 전북 이리시 마동에서 폐병으로 인하여 49세를 일기로 작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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