란제리하우스
<작가의 말 - 세기말의 사랑과 란제리 하우스>
세기말의 사랑은 어떤 것일까?
나는『란제리 하우스』를 집필하는 동안 내내 그런 생각을 했다.
1900년대 초반의 낭만적인 사랑이 포구와 작은 뒷동산 그리고
개울물이 졸졸 흐르는 마을에서 시작되었듯이 우리들의 아버지며
어머니들은 그래도 아름다운 사랑을 했었다. 그러나 우리들의
주변으로 점차 문명이란 것이 밀려들어옴으로해서 사랑의 방식은
많이 변하게 된다.
아버지 대를 이은 아저씨들은 작은 뒷동산 하나 없는 읍이나
면에서 사랑을 하게 되고 형과 누나들은 마침내 도시에서 사랑을
하게 된다. 그리고 이제 우리들의 사랑에 있어서 낭만이란 것이
있나 한 번 돌아보자.
하지만 우리들은 이른 바 문명이라고 하는 거대한 집단병에 걸려
있기 때문에 낭만이라는 걸 거의 찾아낼 수가 없다. 이것이 바로
문명이 만들어 낸 사랑의 방식이며 나아가서는 세기말의 사랑인
것이다.
한 때 강남의 젊은이들 사이에서 야타족이란 말이 유행했지만
이것 역시 문명이 만들어낸 사랑의 한 방식이며 <세기말의 사랑>
이란 범주에 넣어주어야 한다.
일본의 아름다운 한 젊은 여자가 서울의 지하철에서 <치한 플레이
코스>를 하면서 탐스런 엉덩이와 허벅지를 한 남자에게 내맡기고
신음소리를 내는 것 또한 세기말의 사랑이란 범주에 넣어주어야
한다. 그것 역시 문명이란 집단병이 만들어낸 시스템 중의 하나
이기 때문이다.
1900년대 초반의 사람들이 초가집에서 귀뚜라미와 개구리 울음
소리를 들으면서 사랑을 나누었다면 지금의 우리들은 밤새
끊이지 않는,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음울한 소음을 들으며 아파트
층층에서 섹스 때문에 허우적인다.
우리들은 지금 문명이란 병에 걸려 있기 때문에 몹시 초조하다.
우리들은 세기말에 있어서 어떠한 방식으로 사랑을 나누어야
할지 잘 알지도 못한다.
알몸에 하얀 베이비 파우더를 칠하고 자위행위를 하는 한 남자
역시 사랑의 방식을 모르기 때문에 그렇게 쓸쓸하고도 힘든
자위행위를 하는 것이다.
이제 사랑은 더 이상 낭만이 아니다 라고 말하면, 아직은 이해
못할 사람도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 이제 사랑은 낭만이
아니다. 세기말의 사랑에 있어서 사랑은 낭만이 아닌 섹스일
뿐인데 우리들은 아직 그것을 인정치 않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세기말의 그해 겨울에 <세기말의 사랑>을 다룬
한편의 장편소설을 쓰게 됐다. 암울하면서도 광기에 가득찬
웅얼거림이 들려오는 그런 사랑 속에서도 순수함과 낭